회생신청 '007작전' 펼친 GM처럼 혼란 막으려면 기업 빠른결단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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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3-31 17:57:21
"회생 신청을 결정했다면 철저한 보안 속에 신속하게 실행에 옮겨야 합니다. 그래야 파산전야(Bankruptcy Eve) 현상을 막을 수 있습니다."
31일 정준영 서울회생법원장은 매일경제와 인터뷰하면서 이같이 강조했다. 기업이 회생 신청을 준비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임직원들은 자산이나 주식을 급히 처분하며 '도덕적 해이'에 빠지게 된다. 채권자들 역시 경쟁적으로 채권 회수에 나서며 거래를 끊는 일이 벌어진다. 정보가 유출되는 순간 시장과 이해관계자들이 먼저 반응하고 상황은 돌이킬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른바 '파산전야' 현상이다.
최근 온라인 명품 플랫폼 발란의 위기는 파산전야 현상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회생 신청을 준비 중이라는 의혹이 퍼지자 '제2의 티메프 사태'라는 우려가 커졌고, 입점업체와 소비자들의 불안도 확산됐다. 회생 신청이 공식화하기도 전에 시장에서는 정상영업이 어려울 것이라는 인식이 퍼진 셈이다.
정 법원장은 "2009년 회생을 신청한 제너럴모터스(GM)는 이 같은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모두가 잠든 새벽 미국 뉴욕 남부 연방파산법원에 직접 서류를 내기도 했다"며 "'007 작전'이나 '기습적 회생 신청'이라고 표현하지만, 오히려 파산전야 현상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회생 신청 당일에는 법원 역할이 중요해진다. 법원이 회생절차 개시 여부를 신속히 결정해줘야 한다는 것이 정 법원장의 이야기다. 납품업체와 직원들이 회생절차 진행 여부를 알 수 없을 경우 불확실성에 따른 혼란이 커지고, 자칫 파산전야에 가까운 상황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는 "법원이 신속한 회생 개시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선제적 구조조정'이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운영자금이 남아 있고 상거래채권 변제가 가능한 상태에서 회생 신청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런 경우에는 회생 개시 결정과 함께 '영업계속을 위한 포괄허가'를 내려 기업이 영업을 이어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시장에 주는 것이 기업가치를 지키는 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정 법원장은 "미국은 채무자가 회생 신청을 하는 즉시 자동으로 절차가 개시되고, 법원은 영업계속 허가 결정을 내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구 노력이 한계에 다다르고, 채권자들과 채무조정 협상도 어려운 상황이라면 시간을 끌기보다 서둘러 회생절차를 통한 구조조정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 법원장은 시장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회생 신청 전 단계에서 구조조정을 지원하기 위한 방안도 준비하고 있다. 바로 '사전 구조조정 지원(pre-ARS) 조정제도'다. 기업이 채권자들과 비공개로 채무조정을 협의할 수 있도록 민사조정 절차를 활용하는 방식이다. 기업의 재정 상태를 시장에 노출하지 않고 채무조정을 진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정 법원장은 "사전 구조조정 지원 조정제도를 활용한다면 기업이 주요 채권자와 협상을 통해 최종 합의하거나 다수의 동의를 얻어 사전계획안(P-Plan)을 마련한 뒤 회생 신청을 해 산업계와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법원장은 "회생법원은 경제 2번지로서 기업들이 구조조정의 골든타임을 살릴 수 있도록 기업회생제도를 유연하고 실효성 있게 발전시키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법원이 기회를 제공하면 채무자는 구체적인 개선 방안을 마련해 채권자들을 설득해야 한다. 회생절차의 성패는 그 설득력에 달려 있다"고 했다. 그는 "법원 역할은 축구장을 만들어주고 반칙을 잡는 것"이라며 "경기를 뛰는 건 채권자와 채무자"라고 말했다.
[강민우 기자 / 이승윤 기자 / 사진 이충우 기자]